1. 지금 이 문제가 다시 불붙은 이유
정년을 65세로 늘리자는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기업들이 정년 연장의 조건으로 임금피크제를 함께 꺼내 놓고 있습니다. 정년은 늘려 주되 일정 나이부터 임금을 단계적으로 깎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방식이 적법했는지를 두고 다시 분쟁이 늘고 있습니다.
2026년 7월 대법원 판결이 그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한 대형 유통기업이 2015년 정년을 60세로 정하면서 임금피크제를 함께 도입했는데, 사내 전산망에 공지사항과 동의서를 올려 동의를 받았습니다. 전체 근로자 4,906명 중 3,857명, 즉 78%가 동의했고 회사는 2016년 1월부터 제도를 시행했습니다. 임금이 깎인 근로자들이 절차가 잘못되었다며 감액분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고, 1심과 2심은 회사 손을 들어 주었지만 대법원은 임금 감액분 청구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78%가 동의했는데도 무효라는 결론은 언뜻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 이유를 알면 무엇을 다투어야 하는지가 보입니다.
2. 임금피크제는 왜 "동의"가 필요한 제도인가
임금피크제는 특정 연령에 이른 근로자의 임금을 깎는 제도입니다. 근로조건을 불리하게 바꾸는 것이므로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해당합니다.
우리 근로기준법은 이 경우에 절차를 따로 요구합니다. 사용자는 취업규칙을 작성하거나 변경할 때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으면 그 노동조합의, 없으면 근로자 과반수의 의견을 들어야 하고,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그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근로기준법 제94조 제1항 단서). 의견을 듣는 것과 동의를 받는 것은 무게가 전혀 다릅니다. 불리한 변경에는 반대할 수 있는 힘이 주어져 있는 셈입니다.
여기서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누가 동의해야 하는가입니다.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서는 그 노동조합의 동의로 절차가 완성되고, 개별 근로자나 특정 직급의 동의를 따로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반대로 그런 노동조합이 없다면 근로자 과반수가 회의 방식으로 의사를 모아야 합니다. 노동조합이 이미 동의한 사업장이라면 절차 위반을 다투기가 훨씬 어려워지므로, 상담 초기에 이 점부터 가릅니다.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해야 한다는 법률상 의무도 함께 봐야 합니다(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제19조). 회사가 "법이 정년을 늘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임금을 조정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법이 정년 하한을 정했다는 사실이 임금 삭감 절차까지 정당화해 주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위 사건의 근로자들도 정년 연장이 법 개정에 따른 것이므로 임금 삭감의 대가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3. 78%가 동의했는데 왜 무효인가 — 동의의 진짜 의미
여기가 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법이 요구하는 동의는 개별 근로자에게서 서명을 모으는 일이 아니라,
근로자들이 집단으로서 의사를 형성하는 절차입니다.
근로자들이 회사의 개입이나 간섭 없이 서로 의견을 나누고 찬반을 논의할 기회를 가진 뒤 집단적으로 결론을 내렸는지가 기준이 됩니다. 그래서 판단에서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정들입니다.
| 확인하는 것 | 핵심 질문 |
|---|
| 설명의 충실성 | 제도 내용과 삭감 폭을 구체적으로 알렸는가 |
| 절차 취지의 고지 | 이 서명이 불이익 변경에 대한 동의라는 점을 알렸는가 |
| 논의 기회 | 근로자들이 모여 의견을 나눌 시간과 자리가 있었는가 |
| 사용자의 개입 | 부서장 지시나 사실상의 압박이 있었는가 |
위 대법원 사건에서 문제가 된 지점도 여기였습니다. 대법원은 회사가 공지사항과 동의서를 통해 임금피크제의 내용과 동의 절차의 취지를 근로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했다고 보기 어렵고, 그 결과 근로자들이 임금피크제 도입에 관한 집단적 의사를 형성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전산망에서 각자 클릭한 78%는 숫자로는 과반수를 넘지만, 법이 요구한 절차를 거친 동의로는 인정되지 않은 것입니다.
4. 동의가 없으면 어떻게 되는가 — 2023년에 바뀐 법리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달라진 부분을 짚어야 합니다. 인터넷에 남은 옛 설명들이 지금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변경 내용이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갖추었다면 집단적 동의가 없어도 효력을 인정할 수 있다는 법리가 통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2023년 전원합의체 판결로 이 법리를 원칙적으로 변경했습니다.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면서 집단적 동의를 받지 못했다면,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들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유효성을 인정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대법원 2023. 5. 11. 선고 2017다35588, 35595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은 동의권이 "변경되는 취업규칙의 내용이 갖는 타당성이나 합리성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제도가 아무리 그럴듯해도 절차를 건너뛴 것을 내용으로 메울 수는 없다는 뜻이고, 근로자 입장에서는 다툴 여지가 넓어진 변화입니다.
그러면 예외는 무엇인가.
동의권 남용입니다. 취업규칙을 바꿀 필요성이 객관적으로 명백하고 사용자가 진지하게 설득했는데도 근로자 측이 합리적 근거 없이 반대한 경우인데, 대법원은 이 남용 여부를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못 박았습니다. 회사가 "사정이 어려웠다"고 주장하는 정도로는 넘기 어려운 문턱입니다.
5. 절차와 별개의 또 다른 무효 사유 — 연령차별
절차가 적법했더라도 다툴 길이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 법은 사업주가
임금 등의 분야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근로자를 차별하지 못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제4조의4 제1항 제2호). 임금피크제는 나이를 기준으로 임금을 깎는 제도이므로 이 조항의 심사를 받게 됩니다.
여기서 실무상 가장 중요한 갈림길이
정년이 실제로 늘어났는지입니다.
| 유형 | 내용 | 무효 주장의 힘 |
|---|
| 정년연장형 | 정년을 늘리며 그 대가로 임금을 조정 | 임금체계 개편으로 보아 합리적 이유가 인정된 사례 있음 |
| 정년유지형 | 정년은 그대로 둔 채 임금만 삭감 | 합리적 이유 없는 연령차별로 무효가 될 수 있음 |
대법원은 정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정년 전 일정 기간의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가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로 무효인지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했고(대법원 2022. 5. 26. 선고 2017다292343 판결), 반대로 정년을 58세에서 60세로 연장하면서 임금을 조정한 사안에서는 그것이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의 일환이므로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보아 차별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22. 6. 30. 선고 2021다241359 판결).
그래서 회사가 "정년을 늘려 주는 대신"이라고 설명했더라도, 그 무렵 법률상 정년 하한이 이미 60세로 정해져 있었다면 실제로 늘어난 것이 무엇인지를 따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늘어난 정년이 명목뿐이었다면 삭감의 대가가 없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6. 돌려받을 수 있는 범위와 시간의 문제
임금피크제가 무효로 판단되면 근로자는 원래 받아야 했던 임금과 실제 받은 임금의 차액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는 시간의 한계가 있습니다.
임금채권은 3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시효로 소멸합니다(근로기준법 제49조). 임금피크제는 매달 반복해서 임금을 깎는 형태로 작동하므로, 다투지 않고 지나간 기간의 차액은 오래된 것부터 차례로 소멸해 갑니다. 제도가 도입된 지 여러 해가 지난 사건이라면, 무효 판단을 받더라도 회수 범위가 최근 3년분으로 줄어드는 것입니다. 위 사건에서 근로자들이 2016년 시행된 제도를 두고 2022년 12월에 소송을 낸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유형에서는 판단을 오래 미루는 것이 그 자체로 손실이 됩니다. 다툴지 말지를 정하지 못했더라도, 지금 소멸시효가 어디까지 지나갔는지는 일찍 확인해 두시는 편이 좋습니다.
7. 지금 확인해 두실 것
제 사무실에 이런 상담이 오면 저는 다음 자료부터 확인합니다. 어느 것이든 회사가 아니라 근로자 쪽에 남아 있는 것이 힘이 됩니다.
첫째, 도입 당시 회사가 배포한 안내문·공지·설명 자료입니다. 임금이 얼마나 깎이는지, 이 서명이 무엇에 대한 동의인지가 적혀 있었는지를 봅니다.
둘째, 동의를 받은 방식의 흔적입니다. 전산망 화면, 서명 양식, 부서별 취합 지시 메일, 동의를 독려한 메시지가 모두 의미를 가집니다.
셋째, 급여명세서와 근로계약서, 정년 규정의 변경 이력입니다. 삭감 폭과 정년 연장의 실제 크기를 비교해야 연령차별 여부를 따질 수 있습니다.
넷째, 노동조합이 있다면 그 무렵의 교섭 경위 자료입니다. 과반수로 조직되어 있었는지에 따라 동의의 주체가 달라집니다.
청주와 충북에서도 정년 연장을 앞두고 임금 체계를 손보는 사업장이 늘고 있습니다. 임금 소송은 청주지방법원에서 진행되며, 같은 사업장의 여러 근로자가 함께 다투는 형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성욱 변호사의 관점
이 유형의 상담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은 "그때 다들 그냥 눌렀다"입니다. 그리고 그 한마디가 실은 사건의 핵심을 정확히 짚고 있습니다. 법이 묻는 것은 근로자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지인데, 각자 자리에서 화면의 버튼을 누른 상황은 그 기회가 없었다는 사실을 오히려 잘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다만 제 경험으로는 이 사건들의 결말은 절차 하나로만 정해지지 않습니다. 삭감된 금액과 늘어난 정년이 서로 균형을 이루는지, 회사가 무엇을 내놓았는지가 함께 평가되기 때문에, 상담 단계에서 절차만 보고 전망을 말씀드리는 것은 성실한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조용히 권리를 깎아 나가는 유형의 사건이라, 결론을 미루는 동안에도 회수할 수 있는 몫이 줄어든다는 점을 늘 함께 말씀드립니다.
8. 이 문제로 상담이 필요하시면
임금피크제 분쟁은 사업장마다 도입 경위가 달라 결론이 갈립니다. 사건마다 사실관계가 달라 결과를 미리 장담할 수는 없지만, 도입 당시 자료를 함께 보면 다툴 만한 사건인지, 회수 가능한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비교적 이른 단계에서 가늠할 수 있습니다.
법률사무소 信은 청주에서 21년간 노동 사건을 수행해 왔습니다. 조성욱 변호사는 변호사·변리사·세무사 자격을 함께 보유해 임금 삭감분의 세무 처리까지 연계 검토할 수 있습니다. 상담은 변호사가 직접 진행하며, 유리한 점과 불리한 점을 함께 말씀드립니다. 문의는 ☎ 043-291-5555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