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경과
사건의 줄기를 먼저 표로 정리했습니다.
법원이 든 이유를 항목별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끝나지 않은 부분도 적어 둡니다.
소송비용은 전부 돌아오지 않습니다. 판결이 확정된 뒤 소송비용액 확정 절차를 따로 밟아 1,184만 8,376원이 확정됐습니다. 그런데 법원이 만든 계산서에는 그 금액 옆에 «실제 지출비용보다 적은 변호사보수산입규칙에 따라 계산한 비용 산입»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소송물의 값이 9억 원이어도 규칙이 정한 한도까지만 인정되고 나머지는 이긴 쪽이 안고 갑니다.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는 주문은 쓴 돈을 다 돌려준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판결은 원고 종중과 의뢰인 사이에서만 효력이 있습니다. 법원이 «실질적으로 종중에 해당하는 다른 종친회가 소유했다고 봄이 자연스럽다»고 한 것은 원고의 주장을 배척하기 위한 판단이지, 그 종친회의 소유권을 확정해 준 것이 아닙니다. 그 종친회가 따로 권리를 주장하고 나올 길은 법리상 남아 있습니다.
농지 열세 필지는 각하로 끝났습니다. 각하는 본안을 판단하지 않고 소를 물린 것입니다. 원고가 이전등기를 구하는 형태로 다시 소를 제기하는 것 자체는 막히지 않습니다. 다만 그때도 «1980년대에 원고가 소유자였는가»라는 같은 벽을 넘어야 합니다.
| 구분 | 내용 |
|---|---|
| 의뢰인 | 1981년에 집안 땅의 5분의 1 지분을 등기받은 개인 · 이 소송의 피고 |
| 상대방 | 같은 집안의 한 종중 · 이 소송의 원고 |
| 사건 | 명의신탁 해지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 청구 |
| 청구 내용 | ① 임야 등 여덟 필지의 각 5분의 1 지분 이전등기 ② 농지 열세 필지가 원고 소유임을 확인 ③ 수용보상금 3,932만 원과 지연손해금 |
| 소송물의 값 | 9억 707만 원 |
| 핵심 쟁점 | 1981년 그 등기가 이루어질 무렵, 그 땅의 실제 주인은 누구였는가 |
| 결과 | 확인청구 각하 · 나머지 청구 전부 기각 · 소송비용 전부 원고 부담 · 항소 없이 확정 |
1. 1981년의 등기가 2016년에 돌아왔습니다
의뢰인이 가진 것은 청주 외곽의 임야와 밭 지분이었습니다. 집안이 대를 이어 지켜 온 선산과 그에 딸린 땅이고, 1981년 8월에 집안 사람 다섯 명 앞으로 각 5분의 1씩 공유등기가 마쳐졌습니다. 의뢰인은 그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등기가 된 지 서른 해가 넘도록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2011년에 청주시가 그 땅 가운데 한 필지를 협의취득했습니다. 보상금은 1억 9,662만 원으로 정해졌고, 의뢰인은 그해 12월 자기 지분에 해당하는 3,932만 원을 받았습니다. 공유자로 등기되어 있었으니 지분만큼 받은 것입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16년, 같은 집안의 한 종중이 소송을 냈습니다. 주장은 이랬습니다. > 그 땅은 원래 우리 종중의 재산이다. 1980년 무렵 종중 재산을 함부로 처분하지 못하게 하려고 종원 다섯 명의 이름을 빌려 등기한 것이다. 이제 그 명의신탁을 해지하니 지분을 돌려 달라. 수용보상금도 법률상 원인 없이 받은 것이니 반환하라. 여기에 더해, 다른 농지 열세 필지가 종중 소유임을 확인해 달라는 청구도 함께 냈습니다. 그 땅들은 의뢰인을 포함한 다섯 명 앞으로 합유등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소송물의 값은 9억 707만 원으로 산정됐습니다. 지분과 보상금을 합한 금액입니다. 의뢰인으로서는 집안 땅에 대한 권리를 통째로 잃을 수 있는 소송이었습니다.2. 승부처는 «아니다»가 아니라 «그럼 누구였나»였습니다
이 유형의 사건에서 피고가 가장 먼저 빠지기 쉬운 자리는 «명의신탁이 아니다»를 증명하려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없었던 일을 없었다고 증명하기는 구조적으로 어렵습니다. 40년 전 일이고, 당시 서류는 대개 종중 쪽이 갖고 있으며, 등기 경위를 아는 분들은 대부분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법리부터 짚었습니다. 종중의 명의신탁은 예외적으로 유효한 명의신탁입니다. 1995년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명의신탁은 원칙적으로 무효가 됐지만, 같은 법 제8조 제1호는 종중이 보유한 부동산을 종중 외의 사람 이름으로 등기한 경우를 특례로 빼 두었습니다. 조세 포탈이나 강제집행 면탈, 법령상 제한의 회피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면 그 명의신탁은 유효하고, 종중은 해지해서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즉 원고의 주장이 사실로 인정되면 의뢰인은 지분을 돌려주어야 하는 구조였습니다. 다만 그 사실을 증명할 책임은 종중 쪽에 있습니다. 명의신탁을 주장하는 쪽이 두 가지를 모두 증명해야 합니다. 첫째 그 시점에 자기가 그 땅의 소유자였다는 것, 둘째 명의를 빌려주었다는 것입니다. 앞의 것이 깨지면 뒤의 것은 따질 필요도 없어집니다. 그래서 자리를 옮겼습니다. 저희가 세울 것은 «우리 것이다»가 아니라 «1981년에 그 재산을 실제로 관리한 단체는 원고가 아니다»였습니다. 여기에 종중 사건의 특수성이 맞물립니다. 한 집안에 종중이 하나만 있는 경우는 드뭅니다. 윗대 조상을 중시조로 하는 큰 종중이 있고, 그 아래 갈라진 파마다 다시 모임이 있습니다. 이름도 비슷하고 구성원도 겹칩니다. 소송을 낸 종중은 그중 하나일 뿐이었고, 의뢰인의 기억 속에는 다른 종친회가 있었습니다. 1980년 무렵 선조 네 분의 묘소를 지키려고 따로 만든 모임이었습니다. 승부처는 여기였습니다. 그 종친회가 실체 있는 단체였고 그 시기에 이 재산을 관리하고 있었다면, 원고가 소유자였다는 전제 자체가 무너집니다.3. 실제로 한 일
첫째, 그 종친회의 규약을 찾아 제출했습니다. 1980년 3월에 작성된 문서였습니다. 내용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모임의 이름은 «종친회»로 되어 있었지만, 제1조가 선조 네 분의 묘소 수호와 소속 재산의 영구 보존을 목적으로 내걸었고, 제3조는 이 모임이 종중을 대표하는 기관임을 적었으며, 제15조는 기본재산인 부동산의 관리 방법과 각 선조의 위토로 쓸 토지의 구별을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이름이 무엇이든 실질은 종중이었습니다. 둘째, 1981년 3월의 결산총회 자료를 찾아냈습니다. 이것이 사건을 갈랐습니다. 그 자료에는 1980년 12월 말 기준 종중재산 일람표가 붙어 있었는데, 필지마다 다음을 표로 정리해 두고 있었습니다. ·선조 네 분 가운데 누구를 위한 위토인지 ·당시 등기가 되어 있었는지 ·소유자의 성명 ·특별조치법에 따른 등기 신청을 했는지 ·그 신청자의 성명 그리고 그 «신청자 성명»란에 적힌 사람들이, 1981년 8월에 실제로 공유등기를 마친 다섯 명과 대체로 일치했습니다. 한 필지에서만 형제 중 한 사람이 바뀌어 있었을 뿐입니다. 이 대조가 뜻하는 바는 분명했습니다. 그 등기는 원고 종중이 아니라 그 종친회의 결의에 따라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셋째, 그 종친회가 계속 활동한 단체임을 보였습니다. 1980년 무렵부터 2006년 전까지 매년 정기총회를 열고 시향을 지냈으며, 재산 내역과 명의자, 명의 변동 내역을 보고받아 관리해 왔습니다.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이름이 아니라 실제로 굴러간 조직이었습니다. 넷째, 땅의 현재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문제의 땅들에는 그 종친회가 모시는 선조들의 자손 묘소가 실제로 설치되어 있었고 위토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서류와 현장이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섯째, 원고가 설명을 바꾸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원고는 처음 소장에서 «명의신탁 등기 당시 업무처리자의 실수로 원고의 종중원이 아닌 피고를 포함시켜 등기하게 되었다»고 썼습니다. 그런데 1년 뒤 청구취지를 바꾸면서 낸 준비서면에서는 «그 종친회 집행부가 1981년 8월경 임의로 등기 절차를 진행해 버리는 바람에»로 설명을 바꾸었습니다. 판결문도 각주에 이 변경을 적어 두었습니다. 원고 스스로 그 종친회를 등기의 주체로 끌어들인 셈입니다. 여섯째, 농지 확인청구는 절차로 다투었습니다. 원고는 «그 농지들이 우리 소유인데 피고가 다툰다, 그런데 농지라서 우리 이름으로 이전등기를 할 수 없으니 소유권을 확인해 달라»고 했습니다. 저희는 그 전제를 깼습니다. 농지취득자격증명은 등기를 신청할 때 내는 서류일 뿐, 농지를 취득하는 법률행위의 효력을 좌우하는 요건이 아닙니다. 따라서 증명을 받지 못했다는 사정은 이전등기를 구하지 못할 이유가 되지 않고, 이전등기라는 더 직접적인 수단이 있는 이상 확인의 소를 낼 이익이 없습니다.4. 결과, 그리고 끝나지 않은 부분
법원은 확인청구를 각하하고 나머지 청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소송비용도 전부 원고가 부담하게 했습니다.청구취지
피고는 원고에게, 별지목록 1 기재 각 토지 중 각 1/5 지분에 대하여 2016. 10. 12. 명의신탁해지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하라. 별지목록 2 기재 각 토지는 원고의 소유임을 확인하며, 39,325,880원과 이에 대한 2011. 12. 26.부터 이 사건 판결선고일까지는 연 5%, 그 다음 날부터 갚는 날까지는 연 15%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주문
1. 이 사건 소 중 소유권확인청구 부분을 각하한다.2. 원고의 나머지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3.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판결문에서 그대로 옮겼습니다. 법원·사건번호·당사자 이름은 밝히지 않습니다.
| 종중이 내세운 것 | 법원의 판단 |
|---|---|
| 1980년대에 그 땅들은 우리 종중 재산이었다 | 제출된 서증만으로는 원고가 소유자였다는 점을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인정할 증거가 없다 |
| 종원 다섯 명에게 명의신탁한 것이다 | 소유자였다는 점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명의신탁 주장도 인정할 수 없다 |
| (반대 사실) 다른 종친회의 규약 | 이름은 종친회지만 선조 네 분의 묘소 수호와 재산의 영구 보존을 목적으로 하고 스스로 종중 대표기관임을 규정. 명칭과 관계없이 실질적으로 종중에 해당 |
| (반대 사실) 1981년 결산총회 자료 | 필지별 재산 구별·등기 여부·소유자·신청자를 체계적으로 표로 정리해 관리해 왔다 |
| (반대 사실) 그 표의 신청자와 실제 등기명의자 | 대체로 동일. 그 종친회가 소유·관리하고 그 결의로 공유등기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
| (반대 사실) 한 필지의 권리 변동 | 1931년 여러 사람의 공유로 등기된 뒤 원고에게 소유권이 이전되었다고 볼 자료를 찾을 수 없다 |
| (반대 사실) 현장 | 그 선조들의 자손 묘소가 설치되어 위토로 사용되고 있다 |
| 수용보상금 3,932만 원을 반환하라 | 원고가 그 땅의 소유자임을 인정하기 어려우므로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이유 없다 |
| 농지 열세 필지가 우리 소유임을 확인해 달라 | 이전등기를 구할 수 있는데 확인을 구하는 것은 분쟁의 종국적 해결 방법이 아니어서 확인의 이익이 없다(각하) |
| 결론 | 그 시기에 그 땅들을 소유한 것은 실질적으로 종중에 해당하는 다른 종친회라고 봄이 자연스럽다 |
5. 조성욱 변호사의 관점 — 집안의 땅은 «누가 관리했는가»가 기록으로 남습니다
이 사건에서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40년 전 종이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종중 땅 분쟁은 겉으로는 소유권 다툼이지만 실제로는 «그 시절 이 재산을 돌본 조직이 어디였는가»를 가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답은 생각보다 자주 종이에 남아 있습니다. 규약, 총회 회의록, 결산 자료, 재산 일람표, 시향 기록 같은 것들입니다. 집안 어른의 다락이나 종친회 총무를 맡았던 분의 캐비닛에 들어 있습니다. 이 사건을 가른 1981년 결산총회 자료도 그렇게 나왔습니다. 그 일람표가 결정적이었던 이유는 그 표가 소송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문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시 재산을 관리하려고 실무상 만든 표인데, 거기 적힌 «신청자 성명»이 몇 달 뒤 실제 등기명의자와 겹쳤습니다. 누구를 이기려고 쓴 글이 아니어서 오히려 신빙성이 높습니다. 소송에서 가장 센 서류는 대개 소송과 무관하게 만들어진 서류입니다. «아니다»를 증명하려 하지 않은 것도 이 사건의 방향이었습니다. 명의신탁이 없었다는 것을 직접 증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대신 «그럼 그때 주인은 누구였는가»에 대한 다른 설명을 증거로 세우면 상대의 주장은 증명되지 않은 채 남습니다. 증명책임이 상대에게 있는 사건에서는 이 차이가 결과를 바꿉니다. 끝으로 한 가지. 각하와 기각은 다릅니다. 농지 부분은 각하됐습니다. 의뢰인에게는 둘 다 «상대가 졌다»로 들리지만, 각하는 문 앞에서 돌려보낸 것이고 기각은 안에서 따져 본 끝에 이유가 없다고 한 것입니다. 각하된 부분은 형태를 바꾸어 다시 올 수 있습니다. 판결문을 받으시면 주문의 각 항이 각하인지 기각인지부터 보시기 바랍니다.6. 같은 일을 겪고 계시다면
종중으로부터 «땅을 돌려달라»는 연락이나 소장을 받으셨다면 ·먼저 어느 종중인지 확인하십시오. 한 집안에 종중과 종친회가 여럿인 경우가 많습니다. 소송을 낸 단체가 그 시기에 그 재산을 관리하던 단체와 같은지가 첫 갈림길입니다. ·집안의 옛 서류를 찾으십시오. 규약, 총회 회의록, 결산 자료, 재산 일람표, 시향 기록, 묘소 관리 내역입니다. 돌아가신 어른의 유품과 전직 총무의 보관함을 먼저 보십시오. 이 사건을 가른 문서도 거기서 나왔습니다. ·증명할 쪽은 종중이라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명의신탁을 주장하는 쪽이 «그때 우리가 주인이었다»와 «이름을 빌려줬다»를 모두 증명해야 합니다. 먼저 나서서 «내 땅임»을 증명하려다 보면 불리한 자리로 끌려갑니다. ·보상금을 이미 받으셨다면 그 경위를 정리해 두십시오. 협의취득 서류, 보상금 입금 내역, 지분 비율이 그대로 증거가 됩니다. 돈을 받은 사실 자체가 불리한 것은 아닙니다. 공유자로서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집안 땅의 지분을 갖고 계신 분이라면, 등기부에 이름이 올라 있다는 것만으로 분쟁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수용이나 매각처럼 돈이 생기는 일이 벌어질 때 과거의 등기 경위가 함께 돌아옵니다. 이 사건도 수용보상금을 받고 5년이 지나 소장이 왔습니다. 집안 땅에 보상 이야기가 나오면 그 전에 등기 경위와 관리 주체를 한 번 정리해 두시는 편이 낫습니다. 종중 쪽에서 재산을 되찾으려 하신다면, 해지 통지보다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그 시기에 그 재산을 관리한 주체가 지금의 종중과 같은 조직인지를 서류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규약의 목적 조항, 총회 자료, 재산 관리 기록이 그 답을 담고 있습니다. 조직의 동일성이 흔들리면 명의신탁 주장은 입구에서 막힙니다. 여러 사람이 지분으로 나눠 가진 땅을 정리하는 방법은 공유물분할에 따로 적어 두었습니다. 땅과 건물을 둘러싼 분쟁 전반은 청주 부동산 분쟁 안내에 모아 두었습니다.관련 법령 ·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 제8조 제1호(종중에 대한 특례) · 민법 제741조(부당이득의 내용) · 농지법 제8조(농지취득자격증명의 발급) · 민사소송법 제110조 제1항(소송비용액의 확정결정)
실제 수행한 사건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의뢰인 보호를 위해 당사자·사건번호 등 사건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는 싣지 않았고 일부 사정은 조정했습니다. 개별 사건의 결과는 사실관계와 증거에 따라 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