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답변
1. 이 글은 조금 다른 글입니다
변호사는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됩니다(변호사법 제26조). 그래서 제가 실제 수행한 사건을 그대로 소개할 수는 없습니다. 이 글은 특정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2006년 개업 이래 청주에서 맡아 온 여러 행정 사건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흐름을 일반화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개별 사건의 각색이 아니라 여러 사건의 평균값이므로, "내 사건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까"를 가늠하는 데에는 오히려 더 정확할 수 있습니다. 저는 충청북도 행정심판위원으로 일한 적도 있어 청구서를 쓰는 자리와 읽는 자리를 모두 겪어 보았습니다. 다만 이 글의 사건 이야기는 변호사로 맡은 일에서만 가져왔고, 위원으로 일하며 얻은 것은 어떤 서면에 설득력이 있었는지에 관한 일반적인 관찰로만 적었습니다.2. 분쟁은 처분서가 아니라 사전통지서가 오는 날 시작됩니다
행정 사건이라고 하면 처분서를 받은 날부터 다툼이 시작된다고 생각하시기 쉽습니다. 그러나 제가 만나 온 사건들은 대개 그보다 한 걸음 앞에서 갈렸습니다. 행정청은 의무를 부과하거나 권익을 제한하는 처분을 하기 전에 처분하려는 원인 사실과 내용, 법적 근거, 의견제출 기한을 미리 알리고 의견을 낼 기회를 주어야 하며(행정절차법 제21조 제1항, 제22조 제3항), 그 기한은 10일 이상을 고려해 정해야 합니다(제21조 제3항). 예외 사유 없이 이 절차를 건너뛴 처분은 그것만으로 위법해 취소될 수 있습니다(대법원 2020. 7. 23. 선고 2017두66602 판결). 그런데 이 통지서를 받고 "아직 처분이 난 것은 아니니까" 하며 서랍에 넣어 두시는 분이 적지 않습니다. 상담에 오시는 분들의 첫마디도 대개 비슷합니다. "잘못한 건 맞는데, 이건 너무 무겁지 않나요", 그리고 "담당 공무원한테 전화로 다 설명했어요." 청소년에게 술을 판 식당의 영업정지, 전 주인이 해 둔 증축 때문에 나온 이행강제금, 사업 인허가의 취소까지 처분의 이름은 달라도 흐름은 비슷합니다. 그리고 전화로 한 설명은 어디에도 남지 않습니다.3. 첫 상담에서 확인하는 세 가지
상담에 오시면 저는 세 가지부터 확인합니다. 첫째, 날짜입니다. 사전통지서와 처분서를 각각 언제 받으셨는지 봉투와 등기 수령 기록까지 봅니다. 행정심판과 취소소송은 모두 처분이 있음을 안 날부터 90일 안에 내야 하고(행정심판법 제27조 제1항, 행정소송법 제20조 제1항), 이 기간은 늘릴 수 없는 불변기간입니다. 내용이 아무리 옳아도 기간을 넘기면 판단을 받아 보지도 못하고 끝납니다. 둘째, 처분의 근거와 기준표입니다. 처분서의 조문을 따라가면 대개 시행규칙 별표에 위반 횟수별 처분기준과 감경 사유가 있고, 내 사정이 그 감경 사유에 들어가는지부터 봅니다. 셋째, 지금 무엇이 멈추지 않고 흘러가고 있는가입니다. 행정심판을 청구하거나 소송을 내도 처분의 효력과 집행은 멈추지 않습니다(행정심판법 제30조 제1항, 행정소송법 제23조 제1항). 영업정지 시작일이 다가오는 사건이라면 본안보다 집행정지를 먼저 챙겨야 합니다.4. 길은 셋이고, 대부분은 먼저 고를 수 있습니다
처분이 나오면 길은 크게 세 갈래입니다. 이의신청은 처분한 행정청에 다시 판단해 달라고 하는 길로, 처분을 받은 날부터 30일 안에 합니다. 이의신청을 했더라도 결과를 통지받은 날부터 90일 안에 행정심판이나 소송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행정기본법 제36조 제1항·제4항). 행정심판은 행정부 안의 위원회에 판단을 구하는 길입니다. 청주시장이나 군수의 처분은 충청북도 행정심판위원회가, 충청북도지사나 국가기관의 처분은 원칙적으로 중앙행정심판위원회가 심리합니다(행정심판법 제6조). 행정심판에서는 위법한 처분뿐 아니라 부당한 처분도 다툴 수 있고(제5조 제1호), 위원회는 처분을 취소하는 대신 더 가벼운 처분으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제43조 제3항). 행정소송은 법원에 처분의 위법을 다투는 길입니다. 청주에는 행정법원이 따로 없어 청주지방법원 행정부가 1심을 맡고, 항소심은 대전고등법원 청주재판부에서 진행됩니다. 법원은 처분이 부당한지가 아니라 위법한지를 보되, 재량에 속하는 처분도 재량권의 한계를 넘거나 남용했으면 취소합니다(행정소송법 제27조). 세 길 가운데 무엇을 먼저 밟을지는 대개 고를 수 있습니다. 행정심판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소송을 낼 수 있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입니다(행정소송법 제18조 제1항). 기간 안에 행정심판을 청구해 재결을 받았다면 소송 기간은 재결서 정본을 송달받은 날부터 90일로 다시 셉니다(제20조 제1항 단서). 기간을 넘겨 낸 행정심판의 재결을 받았다고 해서 소송 기간이 되살아나지는 않습니다(대법원 2011. 11. 24. 선고 2011두18786 판결). 다만 운전면허 처분(도로교통법 제142조), 공무원 징계(국가공무원법 제16조 제1항), 국세 처분(국세기본법 제56조 제2항)처럼 앞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 처분이 있고, 토지 수용 보상금처럼 다투는 길이 따로 정해진 처분도 있습니다. 각각은 운전면허, 공무원 징계, 세금, 토지 보상금 글에 따로 정리했습니다.| 길 | 어디에 | 기한 | 무엇을 보나 |
|---|---|---|---|
| 이의신청 | 처분한 행정청 | 처분을 받은 날부터 30일 | 처분의 재검토 |
| 행정심판 | 충청북도 행정심판위원회 · 중앙행정심판위원회 | 안 날부터 90일 · 있었던 날부터 180일 | 위법과 부당 |
| 행정소송 | 청주지방법원 행정부(1심) | 안 날부터 90일 · 있은 날부터 1년(심판을 거쳤으면 재결서를 받은 날부터 90일) | 위법(재량권 일탈·남용 포함) |
5. 실전의 결말을 가르는 세 지점
개별 처분의 요건은 다른 FAQ에 정리되어 있지만, 실제 사건의 결말은 대개 다음 세 지점에서 갈립니다. 첫째, 처분이 나오기 전에 남긴 서면입니다. 의견제출 단계에서 매출 자료, 고용 인원, 처음 적발된 것인지, 재발을 막으려고 무엇을 바꿨는지를 서면으로 내 두면, 처분이 가볍게 나오기도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행정청이 이 사정을 알고도 고려하지 않았다"는 주장의 근거가 남습니다. 둘째, 기준표와 내 사정 사이의 간격입니다. 대법원은 제재처분의 기준이 시행규칙 같은 부령에 정해져 있어도 행정청 내부의 사무처리준칙에 지나지 않아 법원을 기속하지 않는다고 보면서도, 그 기준에 따른 처분이 현저히 부당하다고 볼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한 섣불리 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대법원 2007. 9. 20. 선고 2007두6946 판결). "억울하다"는 말만으로는 기준표를 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위원으로 일할 때도 설득력이 있었던 청구서는 사정을 길게 호소한 서면보다 처분 사유와 기준표, 감경 사유를 하나씩 맞대어 보여 준 서면이었습니다. 셋째, 집행정지를 신청하는 시점입니다. 영업정지 기간이 다 지나가면 처분의 효과가 없어져 원칙적으로 그 취소를 구할 이익마저 사라집니다. 뒤의 처분을 무겁게 하는 기준이 시행규칙에 있으면 기간이 지나도 다툴 수 있지만(대법원 2006. 6. 22. 선고 2003두1684 전원합의체 판결), 그사이 닫은 가게의 손실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집행정지를 신청할 때는 손해가 크고 급하다는 점을 매출, 대출 상환, 직원 급여 같은 자료로 소명합니다(행정심판법 제30조 제2항, 행정소송법 제23조 제2항). 영업정지 사건의 집행정지는 영업정지 행정심판에서 더 자세히 다뤘습니다.6. 21년차의 당부: 전화 대신 서면으로 남기십시오
마지막으로, 행정 사건을 오래 다뤄 본 사람으로서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처분이 억울할수록 담당 공무원에게 전화하고 찾아가 항의하고 싶어지십니다. 그러나 그렇게 쏟은 말은 기록에 남지 않습니다. 또 사업을 계속하시는 한 그 행정청은 다음 해에도 다시 만날 상대입니다. 처분을 다투는 일과 관계를 끊는 일은 다릅니다. 할 말은 의견제출서와 청구서에 담고, 창구에서는 절차를 묻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이긴 뒤도 함께 생각해 두셔야 합니다. 처분이 취소되어도 사업은 같은 행정청의 관리 아래 계속되므로, 저는 다투는 동안에도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영업 방식이나 시설을 어떻게 바꿀지를 함께 봅니다. 사건마다 사실관계가 달라 결과를 미리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행정 사건에서 사업과 자격을 지키는 것은 목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날짜를 지키고 서면을 남기는 부지런함이고, 그 부지런함은 사전통지서를 받은 바로 그 주에 가장 큰 값을 합니다.관련 법령 · 행정절차법 제21조(처분의 사전 통지), 제22조(의견청취) / 행정기본법 제36조(처분에 대한 이의신청) / 행정심판법 제5조(행정심판의 종류), 제6조(행정심판위원회의 설치), 제27조(심판청구의 기간), 제30조(집행정지), 제43조(재결의 구분) / 행정소송법 제18조(행정심판과의 관계), 제20조(제소기간), 제23조(집행정지), 제27조(재량처분의 취소) / 도로교통법 제142조(행정소송과의 관계) / 국가공무원법 제16조(행정소송과의 관계) / 국세기본법 제56조(다른 법률과의 관계) / 대법원 2020. 7. 23. 선고 2017두66602 판결, 대법원 2011. 11. 24. 선고 2011두18786 판결, 대법원 2007. 9. 20. 선고 2007두6946 판결, 대법원 2006. 6. 22. 선고 2003두1684 전원합의체 판결 / 영업정지·이행강제금·토지 수용 보상·공무원 징계·세금·운전면허 등 처분별 상세는 행정 카테고리의 별도 FAQ 참조